[5] 한국천주교 박해와 순교성지
1. 1세기 동안 지속된 박해와 4대 박해사건
- 박해 사유는 하느님을 만물 위에 받들고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천주교는,
- 당시 국교의 성격을 띠고 있던 유교 사회와 근본적으로 대립
- 특히 보편성을 요구하는 천주교의 근대적 평등 사상은 충효를 숭상하던 가부장적 봉건 윤리와 충돌
- 이러한 대립은 정조 15년(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현실로 나타남.
-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하여 교리에 따라 제사를 폐하고 신주(神主)를 불살랐음
- 이에 주자가례(朱子家禮=유교예법)를 어긴 죄목으로 처형당함. 이것을 시작으로 박해는 본격화됨
- 1791년 신해박해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참수됨
-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광화문에서 시복됨
- 한국의 박해는 1785년(을사추조적발사건=미사 중 적발)에 시작됨. 적발된 김범우도마 1786년 순교
- 1801년(신유박해), 1839년(기해박해), 1846년(병오박해), 1866년(병인박해) 등 4대 박해를 비롯
- 1901년 제주도 박해(신축교난 300명 순교)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박해가 1세기 동안 계속
- 교회가 창설된 뒤 100여년 동안에 1만명에 헤아리는 순교자를 냈다.
- 정하상은 <상재상서>(上宰相書) 제출하여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하고 순교 <1839년(기해박해)>
- 김대건 신부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한강변에서 순교 <1846년(병오박해)>
- 대원군 치하에서 한국교회사상 최대의 가혹한 박해로 8000명 순교 <1866년(병인박해)>
-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심산유곡에 교우촌을 이루고, 후일 신앙 자유의 날을 맞게 됨
- 1945년 8.15광복 후 북한 공산치하에서는 또 무서운 박해가 일어났다
- 보위부에 잡혀간 신부 · 수사 · 수녀 들은 간첩 죄목으로, 일반 신자들도 반동분자라는 죄목 감금
- 남북한을 통해서 체포 학살된 성직자와 수녀 , 신학생의 수는 150여명에 달한다.
- 1962년에는 숙원이던 교계제도 (敎階制度)의 설정을 보게됨
- 1984년에는 순교한 선인들 가운데서 공경받는 103위 성인의 영광 받음
2. 황사영 알렉시오를 통해 본 박해 상황
- 1790년 16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
- 정조는 그를 특별히 불러 격려하면서 나이 20세가 되면 벼슬을 내리겠다고 약속
- 정조가 황사영의 손을 잡아주었데, 그는 이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손목을 명주로 감고 다님
-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딸 정난주와 결혼하여 정약용의 조카사위가 됨
- 이승훈과는 사돈간이 되었고, 초창기의 교회를 이끌던 인물인 정약종과는 처삼촌지간
- 1791년에 세례를 받고 입교-1791년 10월(음)에 신해박해 때 배교자가 속출했으나
- 그는 천주교를 "세상을 구제하는 좋은 약"으로 확신하며 신앙을 지킴
- 조상제사 포기는 벼슬길을 포기하는 일이었는데,
- 정조의 특별격려 속에 출세가 보장되어있었지만 세상 출세에 뜻을 두지않았음
- 주문모 신부가 입국후 측근으로 활동하였고,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동
- 1798년에 서울에 이주한 후 자신의 집을 명도회의 하부 조직인 6회(六會)의 한 장소로 제공
- 그는 서울에서 신도 자제들에게 글과 교리를 가르쳤고, 천주교 서적 필사작업도 열심히 했음
-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던 그는 신유박해 무렵에 교계의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에 속했다.
- 박해의 실상을 중국 구베아 주교에게 알리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백서작성
- 청나라의 무력동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는데, 전달되지 못한채 9월에 체포됨
- 서소문 밖에서 온몸이 찢기는 능지처사를 당했고 멸문지화에 처해짐
- 모친 이윤혜는 거제도로, 부인 정명련(정약용의 조카)는 제주도 대정현으로 노비
- 두살배기 아들 황경한은 영광군 추자도로 귀양, 숙부 황석필은 함경도 경흥으로 귀양 .
- 심지어 집안의 머슴과 종들도 귀양
- 황사영이 극형을 당한 다음날 그의 집을 헐어 버리고 웅덩이를 파서 물이 고이게 했다(파가저택형)
-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더욱 거세어졌다. 살아남은 천주교도들은 정권의 박해를 피하여
-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태백산맥, 소백산맥의 깊은 산중에 숨어, 천주교의 전국적 확산을 촉진
- 그 결과 종래 지식인 중심의 조선 천주교회가 신유박해를 전후하여 서민사회로 뿌리를 내리게 됨
3. 최대 순교지 해미성지
- 100년동안 3000천명 무명순교지.
- 처형방법=교수형 · 참수 · 몰매질 · 석형 · 백지사형 · 동사형, 자리개형, 생매장형(수천명),
- 죄명=국사범(국가권력,국기문란 불법행위로 처형)
- 2014년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 아시아청년대회 해미성지 읍성 폐막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