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대구대교구

대교구 대구관구

연혁

대구 경북지역은 조선에 천주교 신앙이 처음 전해지던 시기에 서양 학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던 지역 중 한 곳이었다. 19세기 초, 영남지방 최초로 서학을 연구하고 신자가 된 홍유한으로부터 시작된 대구 지역의 천주교는 1830년에서 1835년 사이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 낙골에 살던 이재건과 그 가족이 칠곡 교우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대구에 정착하면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서양 학문에 대한 관심과 천주교 신앙공동체 형성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대구지역의 천주교 신앙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조선 정부에서 자행한 천주교 박해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며 공동체를 유지했다. 그 중 신나무골 성지는 36~40명의 신자들이 거주했던 교우촌 이었는데 경상도지역에서 최초로 사제관이 설립된 곳으로 외국에서 파견된 신부가 머물며 주변으로 신앙을 전파하는 주요한 곳 이었다.

박해가 끝난 후 대구 지역은 이러한 큰 신자 공동체와 철도교통의 요충지인 특성을 살려 서울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1911년 교황 비오10세에 의해 한반도의 단일 교구였던 ‘조선대목구’에서 남부지방을 관할하는 교구인 ‘대구대목구’가 분리되어 창설되었다. 이후 신자 수 증가 등의 이유로 대구대목구에서 호남, 경남지역이 광주, 전주, 부산지목구가 분리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교구 시스템이 도입됨에 따라 대구대교구로 승격되었다.

현재 대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은 계산성당과 범어성당 두 곳이다. 이 중 계산성당은 경상도(동남권)지역의 최초의 서양식 천주교 성당으로 1903년에 축성되었다.

대구대교구의 신자 수는 514,520명이며 164곳의 본당, 두 명의 주교와 536명의 사제가 소속되어있다.


연락처 정보

교구 정보

성지·순교사적지·순례지
보기
숙소·피정의 집
보기
역사·문화·관광
보기